Day 55.
매출이 멈췄다.
Day 45까지 올라가던 그래프가 Day 48에서 꺾였다. 하루 5건이던 주문이 3건으로 줄었다. 그리고 2건. 그리고 어제 — 0건.
0.
다시 0이었다.
5일 남았다. 42만 원이 모자랐다.
진호는 데이터를 봤다. 왜 멈췄을까.
가격 전쟁.
알고 있는 패턴이었다. 글로벌트레이드에서도 겪었다. 시장에서 마진이 좋은 상품이 보이면 경쟁자들이 몰려든다. 가격을 낮추기 시작한다. 바닥까지.
같이 가격을 낮추면 마진이 사라진다. 안 낮추면 주문이 사라진다.
번들. 세트 구성.
글로벌트레이드에서도 같은 전략을 썼다. 부품 A를 단품으로 팔면 가격 경쟁에 휘말린다. A+B+C를 묶어서 솔루션으로 팔면 비교 대상이 사라진다. 가격이 아니라 가치로 파는 거다.
도구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원리는 같았다.
10분 만에 상세 페이지가 나왔다. 진호가 검토했다. "여기 '전기 안전 인증 마크' 강조해." 3분 만에 수정. 등록.
기존 단품 페이지는 유지했다. 번들을 추가한 거였다.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것. 리스크 분산.
그런데 5일이었다. 5일 안에 42만 원.
번들 39,900원. 마진 약 18,000원. 24건 팔아야 한다. 하루 5건.
하루 5건이 한 번 됐었다. Day 45에. 한 번 된 건 다시 될 수 있다.
될 수 있다. 되는 건 아니다. 될 수 있을 뿐이다.
진호는 천장을 봤다. 누런 물때.
안 되면 어떡하지.
미션 실패. Lv.1에서 멈춘다. 모듈 해금 안 된다.
그래서 뭐. 시스템이 뭘 하든 — 진호의 사업은 계속된다. 미션이 실패해도 스마트스토어는 안 닫힌다. 유튜브는 안 지워진다. 홈페이지는 안 내려간다.
시스템은 도구일 뿐이었다. 미션은 게임일 뿐이었다. 진호의 인생은 게임이 아니었다.
될 수 있든 안 되든 — 할 수 있는 건 전부 한다. 그게 바닥에서 배운 거였다.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번들 페이지의 키워드를 수정했다. 광고는 못 태운다. 돈이 없다. 키워드 최적화가 유일한 무기였다.
새벽 3시까지 작업했다.
5일.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결과는 — 시장이 정한다.
Day 60. 마지막 날.
아침 7시. 눈을 떴다. 알람이 아니라 — 몸이 일어났다.
이불을 걷고 노트북을 열었다. 로딩. 스마트스토어 판매자 센터.
알림. 빨간 점.
숫자가 — 11.
11개.
진호의 손이 멈췄다.
클릭했다.
지난 5일간 주문 내역이 쏟아졌다.
Day 56: 번들 세트 2건, 단품 1건.
Day 57: 번들 세트 4건, 단품 2건.
Day 58: 번들 세트 3건, 단품 1건.
Day 59: 번들 세트 5건, 단품 3건.
Day 60 (오늘 새벽): 번들 세트 1건.
번들이 터졌다.
번들 세트 15건 × 39,900원 = 598,500원.
단품 7건 = 108,300원.
5일간 매출: 706,800원.
진호는 계산했다. 손이 떨렸다.
이전 누적 583,200원 + 706,800원 =
1,290,000원.
100만 원을 넘었다.
단말기가 반응했다.
Lv.2. 칭호 — '바닥에서 일어선 자.'
진호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1,290,000원. 순이익 약 44만 원.
44만 원. 월세 35만 원 내면 9만 원 남는다. 여전히 빠듯했다. 200억짜리 회사를 경영하던 사람에게 44만 원은 — 아무것도 아닌 돈이었다.
그런데.
이건 진호가 만든 시스템에서 나온 돈이었다. AI와 함께 만든 시스템. 고시원 2평에서, 노트북 하나로.
승재가 빼앗을 수 없는 돈이었다. 검찰이 동결할 수 없는 돈이었다. 댓글이 욕해도 줄어들지 않는 돈이었다.
진호의 것이었다.
그리고 — 다른 숫자들도 있었다.
유튜브. 영상 56개. 구독자 23명. 총 조회수 4,871.
홈페이지. 소설 14화 게시. 월간 방문자 342명. 한 명이 댓글을 남겼다. 댓글 기능을 어제 추가했는데, 3시간 만에 첫 댓글이 달렸다.
'주인공 응원합니다. 다음 화 기다릴게요.'
한 줄. 모르는 사람이. 진호가 쓴 이야기를 읽고.
응원합니다. 기다릴게요.
6개월 전 댓글 847개가 말했다. 사기꾼. 도둑놈. 쓰레기.
오늘 댓글 1개가 말했다. 응원합니다.
847 대 1. 숫자로는 압도적으로 졌다.
그런데 무게는 — 1이 이겼다.
847개는 진호를 모르는 사람들이 기사 한 줄 보고 쓴 거였다. 1개는 진호의 글을 14화까지 읽은 사람이 쓴 거였다.
모르고 하는 욕과, 알고 하는 응원. 무게가 달랐다.
단말기가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진호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성장했다고. 기계가. 데이터로.
맞나. 성장한 건가. 월 매출 129만 원. 구독자 23명. 방문자 342명.
200억에 비하면 먼지 같은 숫자였다.
그런데 — 200억은 빼앗겼다. 129만 원은 만들었다.
빼앗긴 200억과, 만든 129만 원.
무게가 같았다. 아니 — 129만 원이 더 무거웠다.
창밖을 봤다. 고시원 창문. 가로등. 골목.
같은 풍경이었다. 6개월 동안 매일 본 풍경.
그런데 오늘은 — 가로등 너머가 보였다. 골목 끝이 보였다.
지우가 떠올랐다. 전화 통화. '또 전화해. 꼭.'
진호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연락처. '지우'.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지우가 물었다. "뭔데?"
진호가 웃었다. 소리 내서.
단순한 말이었다. 그런데 진짜였다.
단말기가 깜빡거렸다. 파란 빛.
방향은 맞다.
진호는 알고 있었다.
6개월 전 바닥이었다. 지금도 바닥에 가깝다.
하지만 — 올라가고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시작이었다. 여전히 시작이었다.
그리고 시작은 — 끝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