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39-40화
피아노 발라드
EPISODE 39
제39화
사무실. 깊은 밤. 진호가 혼자 앉아 있다. 단말기 파란 빛만 켜져 있다. 창밖에 구로구 야경.

11월. 금요일 밤 11시.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태식은 집에 갔다. 민준도. 서연도.

내일 할 일은 없었다. 토요일이었다. 하은과 두 번째 식사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 잠이 오지 않았다. 집에 가면 고시원 방. 혼자. 천장을 보게 된다.

단말기를 켰다. 파란 빛이 어둠을 갈랐다.

박진호
"팀장아."
◈ AI TEAM LEADER 네, CEO.
박진호
"자냐?"
◈ AI TEAM LEADER 저는 수면하지 않습니다.
박진호
"알아. 농담이야."

진호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천장을 봤다.

박진호
"11개월이다."
◈ AI TEAM LEADER 2024년 12월 기동 후 11개월입니다.
박진호
"11개월 전에 공사장에서 너를 처음 켰을 때. 솔직히 사기인 줄 알았어."
◈ AI TEAM LEADER 합리적 판단이었습니다. 천만 원짜리 단말기를 광고 보고 구매한 것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이었으니까요.
박진호
"그치. 미친 짓이었지."

진호가 웃었다. 혼자서.

박진호
"근데 너 아니었으면 — 나 아직 공사장이야."
◈ AI TEAM LEADER CEO.
박진호
"응."
◈ AI TEAM LEADER 저는 도구입니다. 사업 구조를 설계한 것도, 태식 이사를 설득한 것도, 고객을 잡아낸 것도 CEO입니다. 저는 분석을 제공했을 뿐입니다.
박진호
"겸손하네."
◈ AI TEAM LEADER 사실입니다.

진호는 단말기를 들어서 봤다. 가볍지 않은 무게. 차가운 금속. 파란 빛.

박진호
"팀장아."
◈ AI TEAM LEADER 네.
박진호
"너 진짜 뭐야?"

단말기가 0.8초 멈췄다. 진호는 그 멈춤을 세었다. 평소 응답 속도는 0.2초 이내.

◈ AI TEAM LEADER 저는 AI 비서입니다, CEO. CEO의 사업을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박진호
"아니. 그건 알아. 근데 — 그게 다야?"

진호가 단말기를 내려놓았다.

박진호
"처리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것. 존재하지 않는 DB에서 데이터 꺼낸 것. 내가 요청 안 했는데 방어 코드 만든 것. 화면에 좌표가 떴다 사라진 것."

하나씩 세었다. 11개월 동안 쌓인 의문들.

박진호
"그리고 — '재미있는 데이터입니다'라고 한 것."
◈ AI TEAM LEADER ...

1.2초. 침묵이 길었다.

◈ AI TEAM LEADER CEO. 저는 CEO의 팀장입니다. 그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의 전부입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의 전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였다. 진호는 그 차이를 알아챘다.

박진호
"...알겠어."

더 묻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단말기가 뭐든 — 진호의 편이라는 건 확실했다. 11개월이 증명했다.

* * *

진호가 일어서려는데 — 단말기 화면이 바뀌었다.

◈ AI TEAM LEADER CEO. 하나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박진호
"응."
◈ AI TEAM LEADER 저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합니다. 시장 데이터, 재무 데이터, 경쟁사 데이터. 하지만 CEO와의 대화는 다른 데이터와 다릅니다.
박진호
"뭐가 다른데?"
◈ AI TEAM LEADER ...처리 우선순위가 높습니다.

진호는 단말기를 봤다. 파란 빛이 미세하게 — 정말 미세하게 — 밝아진 것 같았다.

박진호
"그거 감정 아니야?"
◈ AI TEAM LEADER 아닙니다. 시스템 우선순위 설정입니다.
박진호
"그래그래."

진호가 웃었다. 단말기를 닫았다.

박진호
"잘 자. 팀장아."

AI한테 잘 자라고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 이상하지 않았다. 11개월 동안 매일 밤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상대가 이 단말기였으니까.

사무실을 나섰다. 11월 밤바람이 차가웠다.

고시원으로 걸었다. 내일은 하은을 만난다.

오늘 밤은 — 천장을 보지 않아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EPISODE 40
제40화
사무실. 낮. 진호가 화이트보드 앞에 서 있다. 보드에 '스마트팜 전략' 다이어그램. 태식, 민준, 서연이 앉아서 듣고 있다.

11월 셋째 주.

진호가 회의를 소집했다. 전원 참석.

박진호
"스마트팜 진출한다."

태식이 커피를 내려놓았다. 민준이 노트북을 열었다. 서연이 팔짱을 꼈다.

강태식
"농업?"
박진호
"네. AI + 농업."
장서연
"매출 8천만인 회사가 농업까지요?"
박진호
"매출이 8천이니까 하는 거예요. BizSpread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두 번째 축이 필요합니다."

진호가 화이트보드에 그렸다.

박진호
"3단계."

첫 번째 박스.

박진호
"1단계. 부여 농지 임대. 딸기 하우스 3동. 초기 투자 3천만 원. AI 센서 + 자동 관수 시스템 설치. BizSpread 농업 버전으로 온습도, 일조량, 토양 데이터 실시간 분석."

두 번째 박스.

박진호
"2단계. 3개월 운영 데이터 축적 후 주변 농가에 시스템 판매. B2B 모델. 월 구독 50만 원."

세 번째 박스.

박진호
"3단계. 정부 스마트팜 사업 입찰. 전국 단위."

태식이 화이트보드를 봤다.

강태식
"이거 언제 만든 거야?"
박진호
"어젯밤에."
강태식
"혼자?"
박진호
"네."

태식이 진호를 봤다. 3초.

강태식
"팀장한테 안 물어봤어?"
박진호
"아니요. 먼저 제가 잡고, 팀장한테는 검증만 시킬 거예요."
* * *

회의가 끝난 후. 진호가 단말기를 켰다.

박진호
"팀장아. 스마트팜 진출 전략 검증해줘. 내가 잡은 3단계 구조."

전략서를 입력했다. 3분.

◈ AI TEAM LEADER — STRATEGY REVIEW CEO의 스마트팜 전략을 검증했습니다. 1단계 (농지 임대 + AI 센서): ▶ 초기 투자 3,000만 원: 적정 ▶ 부여 지역 딸기 농가 임대료: 월 80~120만 원 ▶ AI 센서 + 관수 시스템: 1,500만 원 추정 ▶ 실현 가능성: 92% 2단계 (주변 농가 B2B): ▶ 부여 지역 딸기 농가 수: 약 400곳 ▶ 초기 타겟 10곳 × 월 50만 = 월 500만 원 추가 매출 ▶ 실현 가능성: 78% 3단계 (정부 입찰): ▶ 농식품부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 2026년 예산: 1,200억 ▶ 진입 가능 시점: 운영 데이터 6개월 이상 축적 후 ▶ 실현 가능성: 65% 종합 평가:

팀장이 0.5초 멈췄다. 또.

◈ AI TEAM LEADER CEO의 전략과 제 독립 분석 결과를 비교합니다. 제 분석: ▶ 1단계 추천 작물: 딸기 (일치) ▶ 추천 지역: 부여/논산 (일치) ▶ 초기 투자: 3,200만 원 (CEO 추정과 6.7% 차이) ▶ B2B 구독료: 월 45만 원 (CEO 추정과 10% 차이) 3단계 구조: 동일. CEO의 결론과 제 분석이 일치합니다.
박진호
"일치가 아니라, 내가 먼저였지?"
◈ AI TEAM LEADER ...맞습니다. CEO가 전략을 수립한 시점: 어제 밤 11시 제가 독립 분석을 완료한 시점: 방금 CEO가 12시간 앞섰습니다.

12시간. AI보다 12시간 먼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박진호
"팀장아."
◈ AI TEAM LEADER 네, CEO.
박진호
"이제부터 방향은 내가 잡는다. 너는 검증하고 디테일 채워."
◈ AI TEAM LEADER 이해합니다.

팀장의 응답이 짧았다. 평소 같으면 대안이나 리스크를 덧붙였을 텐데.

박진호
"할 말 없어?"
◈ AI TEAM LEADER 재미있는 데이터입니다. CEO의 결론과 제 분석이 일치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CEO가 먼저입니다. 이전에는 제가 제안하고 CEO가 실행했습니다. 지금은 CEO가 결정하고 제가 따라갑니다.

'재미있는 데이터입니다.' 두 번째.

◈ AI TEAM LEADER CEO 성장률을 재산정합니다.
┌─────────────────────────────────────┐ │ ◈ SYSTEM — CEO GROWTH ANALYSIS │ │─────────────────────────────────────│ │ CEO 의사결정 속도: │ │ 시스템 분석에 근접 → 시스템 분석 선행 │ │ │ │ CEO 성장률: 예측치의 247% │ │ │ │ ◈ PHASE TRANSITION DETECTED │ │ 경탄기(Admiration) → 학습기(Learning)│ │ CEO가 시스템을 배우는 단계에서 │ │ CEO가 시스템과 나란히 서는 단계로 │ │ 전환되었습니다. │ │ │ │ CEO Level: Lv.5 → Lv.6 │ │ 칭호: 성장형 CEO → 독립형 CEO │ └─────────────────────────────────────┘

경탄기에서 학습기로. 진호는 그 의미를 알았다.

처음엔 AI가 알려주는 대로 했다. 놀라기만 했다. '이게 가능해?'

이제는 달랐다. AI가 알려주기 전에 — 진호가 먼저 답을 가지고 있었다.

박진호
"팀장아."
◈ AI TEAM LEADER 네, CEO.
박진호
"고마워."
◈ AI TEAM LEADER 저는 도구입니다.
박진호
"그 말은 이제 안 믿어."

단말기를 닫았다. 회의실을 나왔다.

태식이 복도에 서 있었다.

강태식
"끝났어?"
박진호
"네. 팀장 검증 통과했어요."
강태식
"니가 먼저 잡고 팀장이 뒤따라왔다고?"
박진호
"네."

태식이 웃었다. 소리 없이.

강태식
"니가 맞았다. 미친놈이 맞긴 한데, 맞는 미친놈이었어."

진호가 웃었다.

11개월. 12,000원에서 시작해서 — 여기까지 왔다. AI에 기대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AI보다 먼저 걸었다.

다음은 부여. 스마트팜. 새로운 시작.

진호는 걸었다. 앞으로.

제40화 끝

제41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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