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5. 새벽 3시.
자고 있었다. 단말기가 깨웠다.
소리가 났다. 처음 듣는 소리. 고주파 전자음. 짧게. 세 번.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파란 빛이 — 깜빡이고 있었다. 평소의 부드러운 깜빡임이 아니었다. 불규칙했다. 글리치처럼.
단말기를 집어들었다. 화면에 노이즈가 끼어 있었다. 글자가 흔들렸다.
재부팅. 단말기가 스스로 재부팅하고 있었다. 화면이 꺼졌다. 1초. 2초. 켜졌다.
파란 빛이 돌아왔다. 평소의 빛. 안정적으로.
그런데 — 화면에 이상한 메시지가 떠 있었다.
진호는 화면을 봤다. 빠르게 읽었다. 타임스탬프 오류. 현재 시각 2025년 4월 15일. 시스템 원본 시각 — 숫자가 가려져 있었다. '20'까지만 보이고 나머지는 ██로 블록 처리.
5초.
메시지가 사라졌다.
진호는 숨을 멈췄다.
4월 15일. 오늘. 자기 생일이었다.
시스템이 — 자기 생일에 오류를 일으켰다? 우연?
그리고 '시스템 원본 시각'이라는 건 뭐였다. 시스템이 만들어진 시각? 그 시각이 현재와 '불일치'한다?
2025년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시스템이 만들어진 시각이 2025년이 아니라는.
'20'으로 시작하는 년도. 2025보다 뒤? 2030? 2040?
머리가 돌았다. 빠르게.
이 단말기는 — 미래에서 온 건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SF 영화 너무 본 거였다. 현실에 미래에서 온 물건이 어딨어.
그런데 —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충전기 없이 작동하는 단말기. 제조사 없는 기기. 껐는데 켜지는 화면. 진호의 생년월일을 아는 시스템. 예금주 '(주)없음'.
하나씩은 설명이 됐다. 전부 합치면 — 안 됐다.
단말기에 물었다. 처음으로 직접.
또. '권한 부족: 비공개.'
질문을 피했다. 또.
그런데 — '지금 중요한 것은 저의 출처가 아니라 CEO의 방향'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기도 했다.
미래에서 왔든, 외계에서 왔든, 누가 만들었든 — 이 시스템은 진호를 도왔다. 속이지 않았다. 데이터는 정확했고, 지시는 합리적이었고, 결과가 나왔다.
출처를 모르는 도구를 쓰는 건 위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 출처를 아는 도구에 속은 적도 있었다. 승재라는 출처가 분명한 사람에게.
생각을 접었다. 생일이었다. 아무도 축하하지 않는 생일.
단말기 화면이 바뀌었다.
기계가 축하했다.
진호는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하지만 — 오늘 이 말을 해준 건 이 기계뿐이었다.
기계에게 고맙다고 했다. 미친놈이었다.
그런데 진심이었다.
Day 108.
강서 현장. 오후 5시. 작업이 끝나는 시간.
진호가 현장 앞에 서 있었다. 인부들이 나오고 있었다. 안전모를 벗고, 담배를 피우고, 봉고차에 타고.
영수가 나왔다. 허리 보호대를 풀면서. 진호를 보고 멈췄다.
영수가 진호를 봤다. 위아래. 작업복이 아니었다. 깨끗한 옷이었다. 얼굴에 살이 붙어 있었다.
진호는 숨을 쉬었다. 한 번. 준비한 말이 있었다. 3일 동안 생각한 말.
영수의 표정이 멈췄다. 2초.
영수가 진호를 봤다. 5초. 10초.
약속. 또 약속이었다. 지우에게도 약속했다. 데리러 간다고. 영수에게도 약속하고 있었다. 올려준다고.
약속만 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됐다.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영수가 허리를 폈다. 보호대를 만졌다. 눈을 감았다 떴다.
진호가 몰랐던 이야기였다. 영수가 한 번도 안 한 말.
영수가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현장에서는 안 웃는 사람이었다. 투박하게 말하고, 국을 건네고,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웃는 얼굴이 — 좋았다.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반장님도, 너도 아니고. 진호야.
영수가 안전모를 벗었다. 진호에게 내밀었다.
파란 안전모. 글씨가 벗겨져 있었다. 진호가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 받았던 것과 같은 거.
진호가 받았다. 가벼웠다.
직원 1호. 영수.
글로벌트레이드의 첫 번째 직원은 김 과장이었다. 인터뷰를 보고, 이력서를 검토하고, 3차까지 면접했다.
이번 첫 번째 직원은 공사장에서 미역국을 건넨 사람이었다. 허리가 아픈 사람이었다. 면접 없이.
그래도 — 확실했다. 이 사람이 맞다는 게.
15년 동안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웠다. 영업력 76. 그중 절반은 사람을 읽는 능력이었다.
영수는 — 성실하고, 투박하고,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진호가 잃어버린 것 중 하나였다. 믿을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