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밤. 진호가 단말기 앞에 앉아 있다. 화면에 재무 데이터가 나열되어 있다. 파란 빛.
9월 5일. 밤 11시.
태식이 3일 동안 7곳을 돌았다. 5곳은 잡았다. 2곳은 놓쳤다.
놓친 2곳의 이유는 같았다. "단톡방 캡처를 봤다."
소문이 이미지가 되면 사실이 된다. 사실이 아니어도.
진호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단말기를 켰다.
◈ AI TEAM LEADER
완료했습니다.
대응 시나리오 3개:
A) 법적 대응 — 명예훼손 고소
소요: 3~6개월 / 비용: 1,500만 원+
리스크: 소송 자체가 뉴스 → 역효과
B) 실적 기반 방어 — 현재 진행 중
효과: 기존 고객 유지 가능
한계: 신규 유입 차단 못 함
C) 역공 — 최승재의 약점 활용
핵심: 재무 데이터
◈ AI TEAM LEADER — CONFIDENTIAL
CEO, 이전에 확보한 글로벌트레이드
포괄위임장 날짜 조작 건 외에
추가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진호가 의자를 당겼다.
◈ AI TEAM LEADER
글로벌트레이드 공시 자료 분석 결과:
▶ 2024년 3분기 매출: 공시 48억
▶ 실제 추정 매출: 31억 (거래처 이탈 반영)
▶ 차이: 17억
▶ 2024년 4분기 매출: 공시 52억
▶ 실제 추정 매출: 28억 (동남아 전량 이탈)
▶ 차이: 24억
2개 분기 연속 매출 과대계상.
분식회계 정황입니다.
◈ AI TEAM LEADER
공시 자료: 금융감독원 DART
거래처 이탈 데이터: 무역협회 공개 통관 실적
추정 로직: 거래처별 평균 거래액 × 잔존율
공개 데이터만으로 도출한 결과입니다.
진호는 화면을 봤다. 공개 데이터. 누구나 볼 수 있는 숫자. 하지만 — 이걸 이렇게 조합한 건 팀장뿐이었다.
◈ AI TEAM LEADER
맞습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20조 위반 시:
▶ 대표이사: 최대 징역 10년 또는 벌금
▶ 회사: 증권선물위원회 조사 → 상장폐지 가능
▶ 감사인: 연대 책임
단, CEO.
◈ AI TEAM LEADER
이 데이터는 정황입니다.
확정 증거가 되려면 내부 장부가 필요합니다.
현재 상태로는 "의혹 제기"는 가능하지만
"입증"은 불가합니다.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혹과 증거 사이. 그 간극이 문제였다.
◈ AI TEAM LEADER
방법 2가지:
1) 내부 제보자 — 글로벌트레이드 재직자 중
불만을 가진 인물 접촉
2) 금감원 제보 — 정황 자료 제출 후
공식 조사 요청
추천: 1번.
현재 직원 월급 3개월 밀림.
내부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호는 화면을 닫지 않았다. 김과장. EP29에서 전화했던 그 사람. 직원 월급이 밀리고 있다고 했던.
글로벌트레이드 재무팀 김과장. 5년 동안 같이 일한 사람. 해임 당하던 날, 박스를 들고 나가는 진호에게 유일하게 고개를 숙인 사람.
◈ AI TEAM LEADER
이해합니다.
박진호
"근데 준비는 해둬. 정황 자료 정리해서 폴더 하나 만들어놔."
◈ AI TEAM LEADER
'최승재 재무 분석' 폴더를 생성합니다.
접근 권한: CEO Only.
진호는 의자에 기댔다.
* * *
전화기를 꺼냈다. 연락처를 스크롤했다. 김과장 번호가 있었다. 예전 번호.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직이었다. 그 카드는 — 진짜로 필요할 때 쓰는 거였다.
대신 태식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 최승재 건 정리됐어요. 카드가 생겼습니다. 내일 얘기해요.'
30초 뒤 답장이 왔다.
'알겠다. 잘 자.'
┌─────────────────────────────────────┐
│ ◈ STATUS UPDATE │
│─────────────────────────────────────│
│ [빌런 퀘스트] 최승재 대응 │
│ 진행률: 40% │
│ │
│ 확보 카드: │
│ ▸ 포괄위임장 날짜 조작 (디지털 포렌식) │
│ ▸ 분식회계 정황 (공시 vs 실제 괴리) │
│ ▸ 잠재 내부 제보자 (김과장) │
│ │
│ 미사용. 대기 중. │
└─────────────────────────────────────┘
진호는 단말기를 닫았다. 사무실을 나섰다.
무기는 갖췄다. 쓸 타이밍은 — 진호가 정한다.
구로구 밤거리. 가로등 아래 편의점 불빛이 보였다. 문득 — 하은이 생각났다.
아직 번호를 모른다. 물어봐야지, 하고 또 생각만 했다.
사무실. 낮. 모니터 3대가 켜져 있다. 진호와 민준이 나란히 앉아 있다. 화면에 코드와 API 대시보드.
9월 둘째 주.
최승재의 소문은 여전히 돌고 있었다. 하지만 태식이 잡아둔 3곳은 버텼다. 새로운 이탈은 없었다.
진호는 다른 걸 하고 있었다.
박진호
"민준아. BizSpread 응답 속도 지금 얼마야?"
정민준
"평균 2.3초요. 고객사별로 다른데, 복잡한 쿼리는 4~5초 걸려요."
박진호
"업계 평균이면 안 돼. SEAN이면 1초 안에 끝나야 해."
민준이 눈을 깜빡였다. 1초. 현재 아키텍처로는 불가능했다.
◈ AI TEAM LEADER
네, CEO.
박진호
"현재 BizSpread는 단일 AI 모델로 처리하고 있지?"
◈ AI TEAM LEADER
맞습니다.
현재 구조:
▶ 모든 요청 → 단일 LLM → 응답
▶ 평균 응답: 2.3초
▶ 병목: 복잡 쿼리 시 모델 과부하
민준이 돌아봤다.
박진호
"요청을 분류해서 다른 모델로 보내는 거야. 단순 조회는 가벼운 모델. 분석은 중간. 전략 제안은 최상위. 세 단계로 나눠."
진호가 화이트보드에 그렸다. 세 개의 박스. 화살표.
박진호
"입력 → 분류기 → 라우팅. 가벼운 건 Haiku급으로 0.3초. 중간은 Sonnet급으로 1초. 무거운 건 Opus급으로 2초. 전체 평균 0.8초."
정민준
"...대표님. 이거 어디서 본 거예요?"
민준이 화이트보드를 봤다. 아키텍처가 깔끔했다. 대기업 기술팀에서 나올 법한 구조를 — 진호가 혼자 그렸다.
* * *
구축에 3일이 걸렸다.
사무실. 밤. 진호와 민준이 모니터 앞에서 코드를 보고 있다. 빈 커피잔 3개.
민준이 코드를 짰다. 진호가 구조를 잡았다. 팀장이 최적화를 검증했다.
셋째 날 밤. 테스트.
민준이 엔터를 쳤다. 테스트 쿼리 100개. 동시 전송.
화면에 숫자가 떴다.
┌─────────────────────────────────────┐
│ ◈ SYSTEM — MULTI-AI ROUTING TEST │
│─────────────────────────────────────│
│ 테스트 쿼리: 100건 │
│ 평균 응답: 0.74초 │
│ 최대 응답: 1.82초 (Opus급 전략 쿼리) │
│ 최소 응답: 0.11초 (Haiku급 단순 조회) │
│ │
│ 기존 대비: 68% 속도 향상 │
│ 에러율: 0% │
│ │
│ ◈ TEST PASSED │
└─────────────────────────────────────┘
민준이 의자에 기대서 웃었다. 진호도 웃었다. 3일 밤을 샜다.
◈ AI TEAM LEADER
롤아웃을 시작합니다.
102곳 순차 적용. 예상 완료: 6시간.
CEO.
◈ AI TEAM LEADER
이 아키텍처에 대해 한 가지 보고가 있습니다.
◈ AI TEAM LEADER
CEO가 설계한 분류기 로직의
라우팅 정확도를 측정했습니다.
결과: 97.3%
이 수치는 —
팀장이 0.5초 멈췄다. 진호는 그 멈춤을 알아챘다.
◈ AI TEAM LEADER
제가 동일 조건에서 설계한 분류기의
예상 정확도는 96.8%였습니다.
CEO의 설계가 0.5%p 더 정확합니다.
0.5%p. 작은 차이였다. 하지만 — AI가 설계한 것보다 사람이 설계한 게 더 정확했다.
◈ AI TEAM LEADER
가능합니다.
CEO는 고객사 102곳의 실제 사용 패턴을
8개월간 직접 관찰하셨습니다.
저는 데이터로 학습했지만,
CEO는 현장에서 체득하셨습니다.
재미있는 데이터입니다.
'재미있는 데이터입니다.'
그 말이 이상했다. AI가 '재미있다'고 했다. 처음이었다.
◈ AI TEAM LEADER
네, CEO.
◈ AI TEAM LEADER
아닙니다. 데이터의 특이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진호는 단말기를 한참 봤다. 파란 빛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재미있는 데이터입니다.' 그 말이 — 왠지 거짓말 같았다.
* * *
그날 밤. 롤아웃이 끝나고.
진호가 잠들기 전에 단말기를 한 번 더 켰다. 습관이었다.
화면이 켜졌다. 평소와 같은 대시보드.
그런데 — 화면 하단에 프로세스 모니터가 있었다. 멀티 라우팅 시스템의 처리 로그.
숫자가 이상했다.
분류기 처리 속도. 설계 기준 0.05초. 실제 작동: 0.003초.
17배 빨랐다.
같은 코드. 같은 서버. 같은 하드웨어. 그런데 단말기를 경유하면 — 17배 빨라진다.
진호가 민준에게 물으면 — 민준도 모를 거였다. 코드에 없는 최적화. 하드웨어로 설명 안 되는 속도.
◈ AI TEAM LEADER
CEO, 야간 시스템 점검 중입니다.
특이사항 없습니다.
'특이사항 없습니다.'
있었다. 진호는 봤다. 0.003초.
하지만 —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돌아올 거였다. '시스템 최적화입니다.' 혹은 '캐시 효과입니다.'
진호는 단말기를 닫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 단말기는 — 대체 뭘까.
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최승재를 막는 게 먼저였다. 고객을 지키는 게 먼저였다.
질문은 — 나중에 하기로 했다.
제34화 끝
제35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