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셋째 주.
장서연이 합류했다. 법인 전환을 3일 만에 끝냈다. 'SEAN AI 주식회사.' 자본금 5천만 원. 대표이사 박진호. 이사 강태식.
서연이 처음 사무실에 왔을 때 한 말.
서연이 웃었다. 35세. 회계법인 7년. 숫자를 다루는 건 태식보다 나았고, 사람을 다루는 건 태식보다 못했다. 그래서 좋은 조합이었다.
AI 바우처 사업 신청. 서연이 서류를 정리했다. 진호가 기술 제안서를 썼다. 태식이 레퍼런스를 모았다.
3주 후 결과가 나왔다.
8곳. 한꺼번에 8곳의 고객이 줄을 섰다.
하지만 진짜 뉴스는 따로 있었다.
태식이 한 달 동안 돌았다. 서울, 인천, 수원. 중견기업 리스트를 만들어서 하나씩.
결과.
태식이 서류를 펼쳤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월 유지보수만 1,500만 원. BizSpread 구독 + 외부 공급 + 신규 3곳.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4명이 숫자를 봤다.
11개월 전, 12,000원.
진호가 먼저 말했다.
태식이 웃었다. 진호도 웃었다.
서연이 엑셀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30년 영업맨의 습관. 항상 한 발 앞을 봐두는 것.
진호는 단말기를 닫았다. 오늘은 일찍 나가기로 했다.
사무실을 나서는데 — 편의점 불빛이 보였다. 관악구가 아니라 구로구. 하은이 일하는 곳이 아니었다.
문득 생각했다. 하은의 번호. 아직 모른다. 10개월째.
내일은 — 물어봐야지.
이번엔 진짜로.
11월 첫째 주.
수요일 밤 10시. 진호가 관악구 편의점 앞에 서 있었다.
구로구에 사무실이 있었지만 — 이 편의점에는 여전히 왔다. 일주일에 두세 번. 컵라면을 먹으러.
거짓말이었다. 컵라면은 핑계였다.
문을 열었다. 종이 울렸다.
하은이 고개를 들었다. 진호를 보고 — 살짝 웃었다.
진호가 컵라면을 집었다. 물을 부었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3분. 늘 그랬다. 3분 동안 컵라면을 기다리면서 — 하은을 봤다. 카운터 뒤에서 재고를 정리하는 뒷모습.
오늘은 달랐다.
3분이 지나고. 컵라면을 다 먹고.
하은이 카운터에서 돌아봤다.
말하고 나서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식사했냐고.
하은이 진호를 봤다. 3초. 표정이 읽히지 않았다.
진호의 손이 컵라면 용기를 만지작거렸다. 긴장하고 있었다. 100억짜리 계약서에 사인할 때는 안 떨리던 손이.
괜찮았다. 괜찮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은이 웃었다. 편의점 형광등 아래에서.
10개월. 10개월 동안 물어보지 못한 걸 — 하은이 먼저 말했다.
토요일. 관악구 작은 식당. 된장찌개.
진호는 처음으로 편의점 밖에서 하은을 봤다. 편의점 조끼가 아닌 — 회색 니트에 검은 코트.
다른 사람 같았다. 같은 사람인데.
진호가 웃었다.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편의점에서 나눈 짧은 말들이 — 쌓여 있었다. 새벽 3시에 일하는 사람끼리. 서로의 피곤함을 아는 사람끼리.
하은이 진호를 봤다. 새벽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으며 노트북을 두드리던 사람이 — 대표.
3년. 진호는 묻지 않았다. 왜 3년이나 편의점에서 일하는지. 그건 — 하은이 말하고 싶을 때 듣는 거였다.
진호가 멈췄다. 수출입 회사 대표. 해임. 공사장. 12,000원.
하은의 눈이 달라졌다. 처음 보는 빛이었다.
담담했다. 불평이 아니었다.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었다.
진호는 된장찌개를 떠먹었다. 이 사람이 좋았다. 왜인지는 — 잘 모르겠다. 그냥.
하은이 먼저 말했다. 또.
진호는 시스템 창을 보고 단말기를 닫았다.
식당을 나왔다. 가을 햇살이 따뜻했다.
하은이 먼저 손을 흔들었다. 진호도 흔들었다.
돌아서서 걸었다. 10걸음쯤. 뒤를 돌아봤다.
하은도 돌아보고 있었다.
둘 다 웃었다. 거리가 있어서 — 서로의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웃고 있다는 건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