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37-38화
일렉트로닉 성장
EPISODE 37
제37화
회의실. 넓은 테이블. 진호와 태식이 한쪽, 맞은편에 정장 차림 3명. 서류에 사인하고 있다.

10월 셋째 주.

장서연이 합류했다. 법인 전환을 3일 만에 끝냈다. 'SEAN AI 주식회사.' 자본금 5천만 원. 대표이사 박진호. 이사 강태식.

서연이 처음 사무실에 왔을 때 한 말.

장서연
"여기가 월 5천만 원 매출 나는 곳이에요? 사무실이 30평밖에 안 되는데."
강태식
"그래서 니가 온 거잖아. 사무실 넓힐 돈 관리하러."

서연이 웃었다. 35세. 회계법인 7년. 숫자를 다루는 건 태식보다 나았고, 사람을 다루는 건 태식보다 못했다. 그래서 좋은 조합이었다.

* * *

AI 바우처 사업 신청. 서연이 서류를 정리했다. 진호가 기술 제안서를 썼다. 태식이 레퍼런스를 모았다.

3주 후 결과가 나왔다.

┌─────────────────────────────────────┐ │ ◈ MISSION CLEAR │ │─────────────────────────────────────│ │ [미션] AI 바우처 공급기업 선정 │ │ 결과: 선정 완료 │ │ 매칭 대기 수요기업: 8곳 │ │ │ │ 보상: 대규모 고객 유입 채널 확보 │ └─────────────────────────────────────┘

8곳. 한꺼번에 8곳의 고객이 줄을 섰다.

하지만 진짜 뉴스는 따로 있었다.

* * *

태식이 한 달 동안 돌았다. 서울, 인천, 수원. 중견기업 리스트를 만들어서 하나씩.

결과.

강태식
"진호야. 앉아봐."

태식이 서류를 펼쳤다.

강태식
"한진테크. 직원 150명. 전자부품 제조. 연간 계약."

첫 번째.

강태식
"코리아푸드. 직원 200명. 식품 유통. 연간 계약."

두 번째.

강태식
"성우건설. 직원 80명. 건설. 연간 계약."

세 번째.

강태식
"3곳 다 연간이야. 해지 안 하는 조건으로."
박진호
"형. 이거 계약금만 합치면..."
강태식
"초기 구축비 합산 9천만. 월 유지보수 합산 1,500만."

월 유지보수만 1,500만 원. BizSpread 구독 + 외부 공급 + 신규 3곳.

장서연
"이번 달 매출 집계해볼까요?"
┌─────────────────────────────────────┐ │ ◈ STATUS UPDATE │ │─────────────────────────────────────│ │ SEAN AI 주식회사 11월 실적 │ │ │ │ BizSpread 구독: 118곳 │ │ 외부 AI 공급: 6건 (연간 3건 포함) │ │ AI 바우처 매칭: 8곳 (온보딩 중) │ │ 월 매출: 8,400만 원 │ │ 전월 대비: +62% │ │ │ │ CEO Level: Lv.5 │ │ 누적 매출: 3억 2천만 원 돌파 │ └─────────────────────────────────────┘
정민준
"8천... 4백만?"
강태식
"바우처 8곳 온보딩 끝나면 억 넘는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4명이 숫자를 봤다.

11개월 전, 12,000원.

진호가 먼저 말했다.

박진호
"형. 사무실 넓혀야 할 것 같아요."
강태식
"그래서 결론이 뭐야?"
박진호
"직원 뽑아야죠."

태식이 웃었다. 진호도 웃었다.

서연이 엑셀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장서연
"직원 채용이면 — 사무실부터 옮기셔야 해요. 여기 30평에 10명 못 앉혀요."
강태식
"구로에 70평짜리 하나 봐뒀어."
박진호
"형, 또 언제 봐둔 거예요."
강태식
"영업 다닐 때 하나 봐둬야 하는 거 아니야."

30년 영업맨의 습관. 항상 한 발 앞을 봐두는 것.

진호는 단말기를 닫았다. 오늘은 일찍 나가기로 했다.

사무실을 나서는데 — 편의점 불빛이 보였다. 관악구가 아니라 구로구. 하은이 일하는 곳이 아니었다.

문득 생각했다. 하은의 번호. 아직 모른다. 10개월째.

내일은 — 물어봐야지.

이번엔 진짜로.

EPISODE 38
제38화
편의점. 밤. 유리창 너머로 여자가 카운터에 서 있다. 밖에 남자가 서 있다. 가을 바람.

11월 첫째 주.

수요일 밤 10시. 진호가 관악구 편의점 앞에 서 있었다.

구로구에 사무실이 있었지만 — 이 편의점에는 여전히 왔다. 일주일에 두세 번. 컵라면을 먹으러.

거짓말이었다. 컵라면은 핑계였다.

문을 열었다. 종이 울렸다.

서하은
"어서오세요."

하은이 고개를 들었다. 진호를 보고 — 살짝 웃었다.

서하은
"오늘도 신라면이에요?"
박진호
"네."

진호가 컵라면을 집었다. 물을 부었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3분. 늘 그랬다. 3분 동안 컵라면을 기다리면서 — 하은을 봤다. 카운터 뒤에서 재고를 정리하는 뒷모습.

오늘은 달랐다.

3분이 지나고. 컵라면을 다 먹고.

박진호
"저기."
서하은
"네?"

하은이 카운터에서 돌아봤다.

박진호
"혹시... 식사하셨어요?"

말하고 나서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식사했냐고.

서하은
"...아직이요."
박진호
"그럼 — 밥 한번 같이 할 수 있을까요?"

하은이 진호를 봤다. 3초. 표정이 읽히지 않았다.

서하은
"지금이요?"
박진호
"아, 아니요. 시간 되실 때. 언제든."

진호의 손이 컵라면 용기를 만지작거렸다. 긴장하고 있었다. 100억짜리 계약서에 사인할 때는 안 떨리던 손이.

서하은
"저 토요일 낮에 쉬어요."
박진호
"토요일."
서하은
"네. 그때 괜찮으세요?"

괜찮았다. 괜찮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박진호
"네. 좋습니다."

하은이 웃었다. 편의점 형광등 아래에서.

서하은
"번호 알려드릴까요?"

10개월. 10개월 동안 물어보지 못한 걸 — 하은이 먼저 말했다.

* * *
작은 식당. 낮.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 창밖에 가을 햇살. 테이블에 된장찌개와 밥.

토요일. 관악구 작은 식당. 된장찌개.

진호는 처음으로 편의점 밖에서 하은을 봤다. 편의점 조끼가 아닌 — 회색 니트에 검은 코트.

다른 사람 같았다. 같은 사람인데.

서하은
"이상하죠? 편의점 말고 다른 데서 보니까."
박진호
"좀... 네."
서하은
"저도 이상해요. 컵라면 안 들고 있으니까."

진호가 웃었다.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편의점에서 나눈 짧은 말들이 — 쌓여 있었다. 새벽 3시에 일하는 사람끼리. 서로의 피곤함을 아는 사람끼리.

서하은
"뭐 하시는 분이에요? 항상 궁금했는데."
박진호
"AI 회사를 하고 있어요."
서하은
"AI?"
박진호
"네. 작은 회사에요. 중소기업한테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하은
"대표님이세요?"
박진호
"네."

하은이 진호를 봤다. 새벽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으며 노트북을 두드리던 사람이 — 대표.

서하은
"...그래서 그렇게 늦게까지 일하신 거였어요?"
박진호
"초기에는 그랬어요.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서하은
"저도 새벽 근무 10개월째인데. 익숙해지는 것 같으면서 안 익숙해져요."
박진호
"편의점 일 오래 하신 건가요?"
서하은
"3년이요."

3년. 진호는 묻지 않았다. 왜 3년이나 편의점에서 일하는지. 그건 — 하은이 말하고 싶을 때 듣는 거였다.

서하은
"사업하시기 전에는 뭐 하셨어요?"

진호가 멈췄다. 수출입 회사 대표. 해임. 공사장. 12,000원.

박진호
"...원래 다른 회사를 했었어요. 잘 안 돼서 접고. 다시 시작한 거예요."
서하은
"다시 시작."
박진호
"네."
서하은
"저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게 있어요."
박진호
"뭔데요?"
서하은
"카페."

하은의 눈이 달라졌다. 처음 보는 빛이었다.

서하은
"작은 거요. 동네에서. 커피 내리고 빵 굽고. 그런 거."
박진호
"좋은데요."
서하은
"돈이 없어서 아직이에요. 편의점 새벽 수당이 제일 높거든요."

담담했다. 불평이 아니었다.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었다.

진호는 된장찌개를 떠먹었다. 이 사람이 좋았다. 왜인지는 — 잘 모르겠다. 그냥.

서하은
"또 만날 수 있어요?"

하은이 먼저 말했다. 또.

박진호
"네. 당연히."
┌─────────────────────────────────────┐ │ ◈ SYSTEM NOTE │ │─────────────────────────────────────│ │ CEO 개인 지표 변화 감지 │ │ │ │ 수면 품질: +12% │ │ 스트레스 지수: -8% │ │ 원인 분석: 불확실 │ │ │ │ ... │ │ 데이터 부족. 모니터링 계속. │ └─────────────────────────────────────┘

진호는 시스템 창을 보고 단말기를 닫았다.

박진호
"팀장아. 그건 분석 안 해도 돼."

식당을 나왔다. 가을 햇살이 따뜻했다.

하은이 먼저 손을 흔들었다. 진호도 흔들었다.

돌아서서 걸었다. 10걸음쯤. 뒤를 돌아봤다.

하은도 돌아보고 있었다.

둘 다 웃었다. 거리가 있어서 — 서로의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웃고 있다는 건 알았다.

제38화 끝

제39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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